댄싱퀸

영화이야기|2016. 7. 1. 11:08


엄정화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댄싱퀸입니다. 무대에서 노래할 때 가장 멋져 보입니다. 그런 그녀가 만약 가수가 안 됐다면 어땠을까요? 『댄싱퀸』은 마치 그 가정을 보여주는 영화 같습니다. 


초반 스피드가 빠릅니다. 정민『황정민』과 정화『엄정화』가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 하고¸ 애를 낳아 살아가는 모습이 런던 보이즈의 할렘 디자이어를 배경으로 순식간에 휘몰아친다. 경쾌한 음악이 끝나고 시계가 2012년에 멈추면 영화는 비로소 하고 싶은 얘기를 꺼냅니다. 왕년의 신촌 마돈나 정화는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동네 문화센터에서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가정주부로 변해 있습니다. 정민은 인권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처가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기죽은 가장입니다. 빡빡한 현실이고¸ 무료한 나날입니다. 내 꿈은 이대로 끝나는 걸까요. 자괴감에 빠지려던 찰나¸ 전철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며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정민은 서울 시장 후보에까지 오르겠습니다. 정화는 슈퍼스타 K에 지원했다가 댄스 그룹 멤버가 될 기회를 얻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 등 많은 영화들이 주창했던¸ 잊고 있던 꿈과 도전에 대해 이야기 입니다. 차별점이라면 부부가 동시에 주체자로 나선다는 점인데¸ 이 과정에서 아쉽게도 억지스러운 장면들이 들어섰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이중생활을 전혀 눈치재치 못한다는 설정은 둘째치더라도¸ 기획사 매니저와 멤버들까지 정화에게 속아 넘어가는 설정은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의 잦은 등장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이를테면¸ 영화 초반 정민과 정화가 할렘 디자이어에 맞춰 전투 경찰들과 육탄전을 벌이는 장면은 『써니』의 소녀들이 터치 바이 터치를 배경으로 시위하는 장면과 겹친다. 집 앞으로 몰려든 기자를 츄리닝 차림으로 맞는 정민의 모습에선 『노팅힐』의 휴 그랜트가 떠오르겠습니다. 연출의 창의성을 의심케 하는 부분입니다. 마무리가 세련되지 못한 것도 아쉽다. 억지 감동을 통해 갈등을 봉합하는 방식은 동의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마음이 움직인다면¸ 순전히 황정민-엄정화 두 배우 덕입니다. 『댄싱퀸』은 명백히 배우의 영화 입니다. 엄정화의 삶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덕에¸ 캐릭터 질감이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정치를 다루는 방법이 지나치게 이상적이긴 하나¸ 황정민의 연기로 인해 현실성을 획득합니다.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모험은¸ 엄정화-황정민이기에 가능했으리라. 『댄싱퀸』은 『방과후 옥상』 『두 얼굴의 여친』을 연출한 이석훈 감독의 3번째 장편 영화 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 이은 황정민-엄정화의 두 번째 합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호흡을 보고 있으면¸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는가를 짐작하게 됩니다. 아무리 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배우가 영화를 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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