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1963년 탄생한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는 엄청난 영화적 잠재력을 지닌 만화였습니다. 문제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는데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다층적이고¸ 세계관은 방대했습니다. 여기에 입맛 까다로운 코믹 북 팬들의 기대에 대한 부담¸ 캐릭터에 부합하는 배우를 찾기 위한 험난한 캐스팅 과정『비용적인 부분에서도』¸ TV 시리즈에 적합할만한 이야기를 2시간 남짓으로 압축해야 하는 각색.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어 보였습니다. 피 말리는 작업이 될 게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마블 스튜디오는 상상 속에서만 활보하고 있던 히어로들의 만남을 스크린 안에 기어코 구현해 냅니다. 마치 할리우드가 왜 꿈의 공장인가를 확인사살해 주겠다는 듯.
무엇보다 놀라운 건¸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마블 스튜디오가 그 동안 투자한 시간과 돈과 끈기 입니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거대 프로젝트에 돌입한 마블 스튜디오는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맨 2』 『퍼스트 어벤져』 『토르 ː 천둥의 신』을 차근차근 내 보내며 『어벤져스』의 밑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모험이라 했고¸ 누군가는 고집이라 했고¸ 누군가는 미친 짓이라 했습니다. 다행히 각 퍼즐조각이 모여 완성된 『어벤져스』는 이 프로젝트가 미친 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슈퍼히어로 물의 지적 수준을 끌어올린 『다크나이트』같은 걸작은 아닐지라도¸ 슈퍼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어벤져스』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어벤져스』에서 중요한 건 독창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건은 독고다이 영웅들을 어떻게 규합해 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다. 개성 강한 주연급 캐릭터들을 데려다가 출연 분량을 쪼개고 누구 하나 섭섭하지 않게 비슷한 무게감을 부여하는 작업은¸ 그럴싸한 악인 캐릭터 하나 만드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든 일입니다. 이 모든 걸 영리하게 조율해 낸 이는 조스 웨던입니다. 마블 코믹스의 팬이기도 한 조스 웨던은 캐릭터 각각의 특성과 이미지를 멋지게 이용할 줄 알았습니다. 고지식한 사고방식의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특유의 자뻑 정신으로 무장한 아이언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셰익스피어 말투를 구사하는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반전에 가까운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헐크『마크 러팔로』¸ 레골라스 버금가는 신궁 실력의 호크 아이『제레미 레너』¸ 미녀는 멍청하다는 통념에 반기를 드는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이들의 이질적 성격이 만나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시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양념처럼 사용된 유머도 발군입니다. 웬만한 코미디 영화보다 좋은 강력한 유머들이 곳곳에서 터집니다. 단¸ 앞선 마블 영화를 얼마나 챙겨봤느냐에 따라 체감 재미가 다르다는 점에서¸ 『어벤져스』는 모두에게 공평하지 읺습니다.『영화를 100% 즐기려면¸ 예습은 필수라는 얘기 입니다.』
극 후반 벌어지는 시가전은 입이 딱 벌어지는 쾌감을 선사합니다. 신선한 전투장면을 보여줘서가 아닙니다. 이제까지 보지 못한 엄청난 물량공세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전쟁 속에 있는 게 바로 그들¸ 히어로들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따져 기존 히어로무비와 크게 다를 게 없는 플롯의 『어벤져스』를 기발하고 특별해보이게 만드는 건 팀으로 뭉친 히어로들입니다. 각자의 영역 안에서 홀로 활동하던 캐릭터들이 경계를 허물고 나와 함께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짜릿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히어로들의 필살기를 한 자리에서 만나는 건¸ 영화라기보다 이벤트에 가깝다.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 대한 기대는 유효합니다.『엔딩 크레딧 후에 다음 편을 암시하는 쿠키 영상이 나옵니다.』 어벤져스는 언제라도 와해될 수 있는 불완전한 팀입니다. 팀의 욕구가 히어로 개인의 욕망을 막아서는 순간¸ 이들은 서로의 목에 칼을 들이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언젠가는 들이댈 것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어벤져스로 뭉친 마블의 히어로들은 시빌 워『마블 코믹스의 또 다른 작품』에 이르러 내전을 벌입니다. 『아이언맨 2』 『인크레더블 헐크』 『토르 ː 천둥의 신』 『퍼스트 어벤져』가 『어벤져스』를 위한 포석이 됐듯¸ 마블 스튜디오는 자신들의 사업을 위해서 『어벤져스』 속편도 『시빌 워』를 위해 희생『?』시킬 준비가 돼 있을 것입니다. 아쉽냐고? 설마! 시빌 워 영화화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어벤져스』가 주는 흥분은 상당합니다. 이 거대한 쇼의 진정한 시작은 이제부터인지 모르겠습니다. The Show Must G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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